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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현태준-국산품

허연소 2008. 1. 17. 10:25






현태준_우주소년 아...부지 Astro boy A...buji_Inkjet Printing_84.1×59.47cm_2007



현태준_우주소년 아리아리랑 Astro boy Ariarirang_Inkjet Printing_84.1×59.47cm_2007


개관 첫 번째 작가로 현태준에게 주목하게 된 이유는 그가 80-90년대를 지나며 홍대 앞이라는 서울의 평균적인 대학가 앞에서 성장한 젊은이 문화와 독특한 자생적 감성과 이미지의 스펙터클 한가운데 위치하기 때문이거나 그러한 풍경을 만들고 유포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태준을 비롯한 그 시절 작가들은 이제 40대에 들어서 조금은 내적 성찰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진지한 사색을 할 수 있는 아저씨 세대가 되었다. 이제는 그들 아니 그들이 놀면서 보낸 지난 시기의 좌충우돌과 미적 취향이 후배 세대들에게 하나의 역할 모델로 자리매김 될 수도 있는 위치에 본인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밀려왔다. 따라서 이번 현태준 개인전의 의미는 한국 사회가 70년대 이후 맹목적으로 매달렸던 경제대국과 고도성장 사회를 위해 요구되었던 근면절약의 건전한 노동자와 바른 생활의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독특한 이데올로기로부터 현태준이 어떤 파열의 지점이자, 일탈의 틈이었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물론 그의 별스런 캐릭터, 말투, 취향 그리고 상상력과 수사학은 기성세대의 미학적 규범과 통상적인 윤리와 태도의 관습을 해체하고 변화시키는 지점으로 나아갔기 때문인데, 한편으로는 우리의 평균적인 문화향수의 수용능력과 비평적 안목이 그와 만날 수 있는 지점으로까지 나아갔다고 할 수도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현태준의 작업의 미적 위상을 이해하고 평가하려는 시도가 어떤 성과를 내놓을 수 있는지 미리 산출해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그가 성장한 환경과 문화적 맥락이 우리의 보편적 현실경험과 그 경험의 평균치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기 때문이고 또한 우리가 그와 같은 동시대를 살아왔기에 그와 그의 세계와 만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기대를 품기 때문이다. ■ 갤러리 상상마당




현태준_매월 18일은 바람 피는 날_36.4×50.74cm_1999



현태준_너도 나도 불조심_51.5×73.57cm_2000



현태준_아리스트와 배반의 계절_51.5×34.17cm_2002



현태준_벌레 먹은 사과_28.4×42cm_2006



현태준_맛있겠구나_42×28.18cm_2006


현태준 ● 66년 서울생. 8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를 졸업하고 대만으로 건너가 2년간 떠돌며 생활하였다. 그 후 92년 부인과 함께 엉뚱하고 재미난 물건들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신식공작실을 운영하였고, 〈뽈랄라 대행진〉, 〈아저씨의 장난감 일기〉,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여행기〉 등 다수의 저서를 출판했다.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수필가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시각 이미지 생산자이며, 누구도 진지하게 눈길을 주지 않는 가벼운 플라스틱 장난감에 심도있는 애정을 쏟으며 수집하고 연구하는 장난감 연구가이다. 97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2001 시립미술관의 도시와 영상전, 액티브와이브 전, 2006 로댕갤러리의 사춘기의 징후 전등 여러 차례 규모 있는 기획전에 초대되었다. ● 작가는 어린 시절 장난감이 가득한 문방구에서 느껴봤을 울렁울렁하는 설렘을 아주 세세한 느낌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여전히 장난감들을 만지작거리며 되살리는 촉각적 기억에 의한 기억력일 것이다. 그는 장난감 수집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접한 지방 소도시의 몰락한 상가 등 피폐한 현실을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에서 장난감과 만화의 이미지에 담아낸다. 돈이 없어 어설프게 복제되는 국산 장난감을 작품화한 오브제나 솔직하고 꾸미지 않은 날것의 이미지들은 고상한체해야 하는 어른들에겐 무시할만한 대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 아줌마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장난감을 만지작거릴 용기가 있는 사람이나 장난감에 응축된 어른과 어린이의 욕망과 사회 축소판으로서의 장난감에 얽힌 의미의 결을 읽어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비주류적이고 거친 듯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섬세하기도 한 작가의 감수성에 동참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작은나무의 블로그
글쓴이 : 작은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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