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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몽골기행산문 16 - 송기노 산의 가을빛

허연소 2008. 7. 30. 11:53

 

  

 송기노 산의 가을빛

 


예부터 울랑바아타르는 분지 지형을 이루어 왔다. 성스러운 산 넷이 둘러싸고 있는 셈인데 보그드한, 바양주르흐, 칭겔테, 그리고 송기노가 그곳이다. 지금은 부쩍 커져서 꼭 네 산에 둘러싸인 도시라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울랑바아타르는 한결같이 그들 정기를 받으며 번성하고 있고 사람들 또한 그에 대한 숭상을 거두지 않는다. 여자는 꼭대기에 오르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도 잘 따른다. 내가 그 넷 가운데서 셋까지 밟은 뒤 마지막으로 송긴하이르한, 곧 송기노 산에 오른 날은 가을이 무르익은 9월 17일 일요일이었다. 어느 안내서에도 꼼꼼한 정보가 나와 있지 않아 어림어림 찾은 길.


일찍 채비를 하고 수흐바아타르 광장 버스정류장에서 11번 버스를 탔다. 징키스한 국제공항으로 가는 차다. 일요일이지만 오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공항으로 나가는 길에 만나는 톨 강은 널찍하니 늘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아침부터 소떼, 양떼가 물길과 함께 멀리 가까이 흐르고 있다. 시내까지 집짐승이 오가고 풀을 뜯는 풍경을 만날 수 있는 도시는 많지 않으리라. 울랑바아타르에서는 그런 일이 예사롭다.


징키스한 국제공항이 있는 곳은 보양토하라 일컫는다. 자비로운 언덕이라는 뜻이다. 사실 공항 동쪽 마을은 넉넉한 언덕 위에 앉아 있어 제대로 이름을 갖춘 느낌이다. 2006년도부터 징키스한으로 바뀌었지만 본디 이름은 보양토하 공항이었다. 보양토하 종점에서 송기노 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4킬로 남짓 떨어진 송기노 마을까지 차를 바꿔 타야 한다. 300투그릭을 받는 미크로버스가 자주 오간다. 나는 늙수룩한 택시 기사와 흥정을 했다. 5000투그릭. 공항 곁을 질러 언덕을 넘고 내려서니 금방 비오콤비나트를 지난다. 사회주의 시기 집짐승의 면역제를 생산하고 검역을 맡았던 곳이다. 지금은 길 왼쪽으로 텅 빈 건물로만 볼 성 사납게 남았다. 송기노는 그것까지 품은 채 톨 강가에 널찍하게 앉은 마을이다. 우리말로 양파, 일요일 아침 송기노 마을은 양파 껍질처럼 고요를 품었다. 버스 정류장 의자에 할머니 둘이 앉아 개와 함께 아침을 즐기고 있을 따름이다.


이제 톨 강을 건너고 들을 질러 송기노 산으로 가야 한다. 그러자면 나무다리를 건널 일. 택시 기사는 나를 첫 나무다리 밑에 내려주고 되돌아간다. 평소 차가 오갈 수 있을 듯싶은데 수리를 하고 있어 더는 들어갈 수 없다. 천천히 옷맵시를 다잡고 들메끈을 새로 맨 다음 걸음을 빨리 밟는다. 짐작보다 송기노 쪽을 흐르는 톨 강은 넓었다. 도도한 물줄기는 가초올트 쪽에서 본 모습과 다르다. 게다가 잘 발달한 물가 들에는 단풍 든 나무들이 노란빛 물감을 떨어뜨리며 서 있다. 소들이 느릿느릿 지나간다. 그들이 뜯고 있는 것은 풀이 아니라 따뜻한 가을빛이다. 온몸이 가을을 닮아 황금빛으로 살졌다. 왼쪽으로 난 들길을 따르니 송기노리조트에 이른다. 한 젊은이가 지나간다.


“송기노 산은 어디로 올라갑니까?”


“거기는 올라가지 못합니다.”


젊은이는 도리질을 친다. 그러면서 차로는 산 왼쪽 밑까지 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못 올라갈 리 없다. 아마 길도 잘 모르는 외국인이, 그것도 혼자서 자신들이 섬기는 성스러운 산에 오르려는 시도를 못 마땅하게 여겼는지 모른다. 멀리서 바라보는 송기노 산은 이름 그대로 단정하게 캐 놓은 양파를 닮았다. 오른쪽 완만한 산등성이를 타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그쪽으로 길을 바꾸어 가다보니 징검돌 시내가 나타난다. 한 아주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다. 물어보니 오른쪽이 오름길이란다. 사진을 찍고자 했으나 금방 등을 돌려 얼굴을 숨긴다. 가르쳐준 길 쪽으로 걷다 보니 철둑이다. 북쪽 셀렝게에서 남쪽 자밍우드까지 오내리는 남북 관통 철도에서 나온 곁가지다. 그 위쪽 바위 벼랑에서는 가족일 듯한 사람 셋이 붙어서 푸른 하닥을 걸고 있다. 아마 집안에 기념할 일이 있었던 게다. 산꼭대기까지 오르지는 못하고 산 아래 하닥을 걸어 신에게 기원을 드리는 것이리라. 그리고 보니 바위 벼랑 이곳저곳에 하닥이 걸렸다.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다 그냥 멀찍이 지나치기로 했다. 그들이 지니고 싶었을 조용한 간구의 시간과 공간을 이국인인 내가 성가시게 만들 염려 탓이다.


시내를 따라 두 번째 나무다리가 나타난다. 먼저 것보다 훨씬 작았으나 맵시는 더 이쁘다. 다리를 건너서니 송기노 산 턱밑이다. 낡은 집이 서너 채. 천천히 숨을 고른 다음 오르기 시작했다. 양들이 몰려 있다 내가 나타나자 부리나케 길을 내어준다. 거친 산 능선이 눈썹 위로 아득하게 걸려 있다. 내려다보니 바위에 하닥을 묶던 일행은 일을 마쳤는지 떠날 준비를 한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인 듯한 여자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고시레를 한다. 아마 소젖이리라. 산은 가팔랐고 곳곳에 돌탑을 쌓아 놓았다. 오내린 사람들이 한 발 한 발 세운 간구의 높이다.


작은 봉우리 넷을 넘어서고서야 꼭대기가 보인다. 바위들은 죄 검은 점판암이다. 한결같이 남쪽 방향으로 켜켜 쭈뼛쭈뼛 섰다. 돌덩이도 얇은 너와 조각 같다. 왜 이 산을 양파라 일컬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멀리서 보거나 가까이서 보거나 송기노 산은 고스란히 양파 꼴인 셈이다. 생각보다 거친 돌길이었다. 바양주르흐 산의 밋밋한 능선이나 드넓고 울울창한 보그드한 산의 숲길에 견주면 산 아래 네 둘레를 한 눈에 가늠하면서 오르는 가파른 맛이 일품이다.


일요일 아침, 조용한 성산 꼭대기. 넉넉하게 두 시간을 내다보았던 걸음은 뜻밖에 1시간 남짓만에 멈추었다. 산 밑에서 볼 때 파란 하늘을 바탕으로 치솟은 산봉우리가 마냥 드높았는데 생각보다 적게 걸린 셈이다. 멀리 징키스한 공항과 보양토하 넓은 언덕, 그리고 동쪽으로 울랑바아타르 화력발전소 굴뚝 연기와 시가지까지 한눈에 든다. 거기다 남쪽 보그드한 산의 높고 거친 위용.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그림은 가파른 남쪽 산벼랑 아래 톨 강을 따라 넓게 펼쳐져 있는 물가 풍경이다. 울랑바아타르가 도심 가까이 이렇듯 아기자기한 들을 숨겼다니. 푸른 물줄기를 지긋 눌러 둔 채 맑은 몽골 가을 숲과 집들이 동쪽에서 물너울처럼 점묘를 이루며 흐르고 있다.


송기노 산 꼭대기 어워는 생각보다 작고 보잘 것 없다. 아마 사람 걸음이 그만큼 뜸했던 탓이리라. 오내리기 힘든 까닭이었을까. 어워 곁에 누군가 느슨하게 꽂아 둔 해발고도 표지판이 기울어져 있다. 녹슨 쇠판 위에 흰 글씨로 2100이라 적었다. 울랑바아타르가 해발 1550미터 남짓 되니 송기노 산은 거기서 550미터 높은 곳인 셈이다. 나는 어워를 조심스럽게 참배한 뒤 사과를 한 알 씹었다. 오를 때부터 기미를 보이던 까마귀들이 내 머리 위까지 다가왔다 다시 날아간다. 아마 제 영역 안에 웬 사람이 들어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내려서는 길은 오르는 걸음 가웃이다. 천천히 송기노 마을을 향해 들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벌써 한낮이라 햇살이 따갑다. 단풍 빛깔이 마냥 또렷하다. 되돌아가는 걸음은 마을 북쪽 방향으로 잡았다. 오면서 본 흰 요양소 건물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강마당 한가운데에 세워진 요양소는 매우 컸고 태깔이 고왔다. 지은 지 마흔 해를 넘긴 러시아풍 건물이다. 황금빛 가을 속에 꽃술처럼 숨어 앉은 품이다. 담장 바깥까지 낙타며 말과 같은 집짐승 조각을 만들어 세운 것을 보니 아예 톨 강 물가를 모두 제 뜰로 삼았다.


강 아래쪽에는 차가 두어 대. 가족인 듯한 사람들이 물장난을 치며 가을 해바라기를 즐기고 있다. 낡은 나무다리에 이르니 위로 아래로 아침에 보이지 않던 낚시꾼들이 이곳저곳 서 있다. 까마귀떼까지 바삐 오간다. 송기노 산 꼭대기에서 내려다 볼 때와 다른 속세 풍경이다. 망태를 들어 보니 벌써 고기를 여럿 채운 사람도 있다. 우리의 피라미와 같은 것이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낚시꾼에게는 좋은 저녁 별미겠다. 나는 한동안 다리 끝에 앉았다. 따뜻한 톨 강의 가을을 쉽게 놓아주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다. 송기노 산은 들 너머 푸르른 서북쪽 하늘에 치솟아 있다. 강가에서 바라보는 산은 어디보다 더 높아 보인다. 그리고 맑고 깨끗한 자태. 허리춤부터 내려 앉힌 송기노 물그림자가 톨 강을 더욱 웅숭깊게 만들고 있다.


두 시를 넘긴 시각. 무거운 채비를 한 낚시꾼 한 사람이 강으로 걸어온다. 양파 산 양파 마을에서는 껍질처럼 벗겨지기보다 더욱 껴입는 느낌이 두텁다. 송기노 마을을 벗어나는 미크로버스에 몸을 싣는다. 아마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그 때는 겨울. 혹 산에 오르지 못할지라도 원도 없이 사태진 눈밭은 떠돌 수 있으리라. 성스러운 산 송기노를 뒤로 한 길이다. 그런데 나는 왜 빗장뼈 까칠한 한 여자의 깊은 데까지 들어갔다 나온 듯한 엉뚱한 생각이 드는 걸까.

 

 



Ernesto Cortazar - Tears




출처 : 소다
글쓴이 : 소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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