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바다르자 절마당에서
박 태 일
울랑바아타르 북쪽에 담바다르자라는 곳이 있다. 셀베 강을 거슬러 오르다 종호바 산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한드가이트 마을로, 오른쪽으로는 다리에흐 골짜기로 드는 갈림길. 그 종호바 산 아래 마을이 담바다르자다. 담바다르자히드 곧 담바다르자 절이 있어 거기서 마을 이름이 비롯되었을 것이다. 울랑바아타르 중심가에서도 가까워 오가기가 쉽다. 20번 시내 버스가 새벽부터 밤까지 울랑바아타르 기차역에서 담바다르자를 거쳐 다리에흐 골짜기까지 자주 들어갔다 나온다.
담바다르자를 내가 찾는 까닭은 셋이다. 첫째, 울랑바아타르 가장자리 게르판자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울랑바아타르 중심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도시 모습을 속속들이 엿보기가 쉽지 않다. 아파트와 큰 건물이 들어서 있는 중심가는 그렇게 이채로운 풍광만은 아니다. 담바다르자는 중심가에서 머지 않으면서도 몽골 서민의 생활상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셀베 강을 축으로 삼아 두 쪽 산등성이로 올라서면서 지어놓은 게르나 판잣집은 몽골 서민의 현주소가 고스란하다. 게다가 야트막한 종호바 산 꼭대기에 올라서면 울랑바아타르 풍광까지 한눈에 건질 수 있다.
둘째, 울랑바아타르에서 절 경관이 가장 빼어난 곳이다. 울랑바아타르에는 관광객이 볼 만한 절이 몇 군데 있다. 몽골 관광객이면 수흐바아타르 광장과 함께 너도 나도 찾는 곳이 간단 사원이다. 그런 만큼 시쳇말로 닳고 닳은 곳이기도 하다. 거기를 둘러본 뒤 3 ․ 4 아파트단지로 알려져 있는 신흥 번화가 쪽으로 슬슬 걸어서 시가지 나들이를 해도 좋다. 10분 정도면 이를 수 있다. 그리고 간단 사원 왼쪽 언덕에 멀찍이 떨어진 타스가니 어워 구릉 아래 게사르숨이 있다. 숨은 히드와 달리 작은 절을 뜻한다. 사람들이 늘 번잡스럽게 드나들며 불공을 드려 몽골 서민 불교를 이해하기 알맞은 장소다. 큰 종 모양인, 울랑바아타르 중심가 이흐토우르 거리 왼쪽에 있는 다시칠렝 절도 빠뜨릴 수 없다. 이 절은 게르 법당으로 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게다가 한국 불교계에서 ‘고려사’를 경내에 두어 한몽 불교 교류를 겨냥하고 있다. 한국인 젊은 스님 한 분이 늘 머문다. 그런데 이런 절들은 죄 울랑바아타르 중심가에 있다. 담바다르자 절은 먼저 자리부터 유별나다.
셋째, 담바다르자 뒤쪽 종호바 산 꼭대기에 있는 어워도 눈길을 끈다. 도심에 덩그라니 남아 있는 타스가니 어워는 크기로는 볼 만하지만 몽골 전통 어워가 지닌 정취를 한껏 맛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담바다르자 어워는 다르다. 가파르긴 하지만 절 뒤쪽으로 종호바 산을 십 분 남짓 거슬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그곳은 외래 관광객의 눈과 손을 타지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까지 갖추었다.
나는 담바다르자 절을 둘러 어워로 올라가면서 울랑바아타르 북쪽 가장자리 경관을 즐기기 위해 집을 나섰다. 11월 22일 수요일이었다. 9월에 첫눈이 내린 뒤 아마 네 번째 눈다운 눈이 내린 아침. 나는 바로 나들이 채비를 했다. 눈이 쌓이면 꼭 다시 보러 가리라 셈하고 있었던 담바다르자에 이르니 10시가 채 못 된 시각이었다. 조용한 아침 절 뜨락은 푸르름이 부풀러 올라 마냥 환했던 여름 경치와는 또 다른 넉넉하고도 하얀 적막을 가두고 있었다. 뜨락에 앉아 있는 네 개의 커다란 전탑은 몽골 불교 전통인 라마탑 양식을 따르지 않고 청나라 목탑 양식을 본땄다. 크고 아름답다. 여러 그루 키 큰 낙엽송이 탑을 곁에서 받들고 있다. 서로 닮았다. 법당 뒤쪽으로 새로 세운 듯한 라마탑도 크긴 마찬가지다. 라마탑 양식을 충실하게 따랐다. 기단부와 탑신부 사이에 2단 연좌대를 강조하고 정작 탑신부는 사뭇 줄이는 특징이 고스란하다. 그러면서 강조한 기단부에 부처의 눈과 눈썹을 꼼꼼한 필치로 그려 넣었다. 오가는 배례자들을 탑이 내려다 보고 있는 모습이다. 추상적인 내면을 강조하는 한국 탑에서 보기 힘든 구체성이다. 배례자를 향한 직접적인 위압감이 느껴진다. 1930년대 사회주의 변혁기에 무너졌던 것을 새로 세워 올린 게다. 나는 누군가 먼저 아침 일찍 밟아 놓았을 성 싶은 발자국을 따라 천천히 탑돌이를 시작했다.
절마당에는 사회주의 변혁기의 수난을 일깨워 주는 모습이 널렸다. 오랜 세월 허물어진 채 서 있었음직한 요사채가 서너 동이나 보였다. 그나마 본전으로 쓰는 한 곳이 절집 모습을 간수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옆에다 새롭게 게르 법당을 두어 스님들이 머물고 예불을 드린다. 그들을 차별없이 품어 안은 너른 절마당은 높고 긴 사각의 흰 담장이 바깥과 경계를 짓고 있다. 한눈에 절의 크기를 일깨워준다. 절로 드는 문은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 세 곳에 나 있다. 일반 사람들은 주로 동쪽 문과 서쪽 문 사이를 오가며 절 뜨락을 골목길로 쓴다. 한길로 나가는 지름인 까닭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 체하고 드나드는 사람들을 슬슬 엿보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 여름, 가을로는 절 안까지 소를 몰고 들어와 풀을 뜯게 하는 한가한 목부까지 있다.
이리저리 거닐고 있는데 젊은 스님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 나를 몽골 사람으로 알았다고 한다. 아침 이른 시각에 관광객이 드문 절집에 어느 외국인이 찾으랴. 가을로 넘어서면서 몽골 사람으로부터 내가 몽골사람인 줄 알았다는 말을 두어 차례 들었다. 몽골에 머문 지 몇 달이 흘러가는 동안 행색이 비슷해진 것일까. 아니면 낯빛에서 긴장이 많이 풀어진 탓일까. 하지만 아직까지 새벽녘 잠자리에서는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조차 이기지 못한다. 겉으로라도 몽골사람다워지기는 틀린 사실인 것을 젊은 스님이 알 리 없다. 어제만 해도 숙소 바깥에서 짖어대는 개소리 탓에 잠을 설쳤다. 한 마리가 짖어대면 다른 동네 개들이 입을 모아 도와준다. 개로서는 좋은 덕성이라 할지 모르나 자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지만 않다. 어쨌든 몽골 사람 같다는 말은 듣기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으렷다. 스물두 살에 부제라는 이름을 가진 그 스님은 바깥 손님 접대를 자신이 도맡는다고 한다. 불교대학에서 따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승이었다. 대처와 고기를 금하면서 제대로 불법을 닦으려는 자세도 갖추었다.
만난 참에 그에게 본전을 보여줄 수 있는가고 청을 넣었다. 추운 겨우내 게르 법당으로 부처님을 옮겨놓고 법회도 거기서 드리는 까닭에 본전이 잠겨 있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절 관리인과 함께 열쇠를 따고 들어갔다. 본전은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에는 자잘한 절 용구들을 놓아 두었다. 2층에는 부처님을 모셨다. 뒤로 가볍게 꾸민 자수 탱화가 몇 폭 걸려 있다. 썰렁하기가 난처하게 옷을 벗고 있는 모습을 들킨 아주머니를 보는 느낌이다. 본전을 둘러보고 나와서 올려다본 용마루 끝의 치미가 그나마 절의 옛 품격을 웅변하고 있다. 그런데 치미 방향이 지붕 안쪽으로 향했다. 그것이 중국 양식인지, 몽골 양식인지는 알 도리가 없으나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가장 오랜 듯이 보이는 것은 본전 법당을 오내리는 돌 계단이다. 꽉 다물고 앉은 절집의 시간이 돌 빛깔처럼 환하다. 옆으로 돌아가니 허물어진 요사채가 몇 동. 날씨를 피해 작은 까마귀 두 마리가 처마에 깃을 치고 앉았다. 바람에 떨고 있는 깃털보다 붉은 부리가 더 추워 보인다.
부제 스님은 내쳐 나를 게르 법당 안까지 불러 주었다. 경을 읽고 있는 스님이 한둘 아니다. 특히 눈을 끄는 것은 대형 자수 탱화였다. 왼쪽, 오른쪽 세 개씩 걸어둔 자수 탱화는 법당 분위기를 경건하게 이끄는 데 커다란 몫을 한다. 아마 본전에서 옮겨온 것이리라. 그리고 법당 가운데는 석가모니 불상을 모셨다. 한 바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배례를 하고 가볍게 시주를 한 다음 법당을 나왔다. 허락없이 사진을 찍지 말아라, 법당 문지방을 밟지 말라, 법당 참배는 시계 방향으로 하라, 모자는 벗어라. 몽골 절을 둘러 볼 때 주의해야 할 일들은 이미 몸에 익힌 나다. 부제 스님과 헤어지면서 몽골 불교계의 큰 스님이 될 것이라는 덕담을 건넸더니 매우 겸손해 한다.
담바다르자 어워는 종호바 산 꼭대기에 있다. 가파르긴 해도 오르는 길에 작은 라마탑이 둘 차례로 서 있어 숨을 돌리게 한다. 어워는 흔히 볼 수 있는 크기다. 하지만 하닥이나 풍마(風馬)로 차린 꾸밈새는 화려하다. 많은 이들이 오간다는 뜻이다. 본디 어워는 몽골 전통 하늘 신앙의 대상물이다. 그래서 어워제는 무당들 몫이다. 어워 신앙은 사회주의 시기에 억눌려 쇠퇴했다가 개방된 뒤 완전히 되살아났다. 그러면서 불교 활성화와 더불어 어워제를 스님들이 도맡는 경우가 많아졌다. 담바다르자 어워도 오르는 길에 탑을 마련해 둔 것으로 보아 스님들이 어워제를 맡고 있음에 틀림없다. 추운 날, 장갑을 끼었는데도 산 꼭대기에서는 카메라를 쥔 손이 아린다. 눈 덮인 어워 돌들이 되비추는 햇살이 따가운 느낌을 더한다. 셀베 강 너머로 건너 칭겔테 산 모습이 한눈에 든다. 잣나무 숲으로 덮인 남쪽 보그드한 산을 향해 얼어붙은 셀베 강이 흰 햇살을 반짝이면서 구불구불 내려가고 있다. 몽골의 게르 판잣집 마을은 강줄기로 말미암아 추위 속에서도 풍요로움을 더한다.
춥다. 종호바 어워를 서둘러 내려 왔다. 다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한길가에는 화목인 장작 묶음과 석탄을 포대째 파는 사람이 여럿 늘어서 있다. 긴 겨울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결같은 풍경을 만들고 있는 이들이다. 물어보니 장작은 한 묶음에 800-900투그릭, 석탄 한 포대는 1100투그릭이다. 지난 봄 700투그릭했던 장작이 그 새 100투그릭 올랐다. 800투그릭 짜리 장작은 아마 소나무리라. 900투그릭짜리는 낙엽송일까. 타는 시간과 화력에 따라 100 투그릭 차이가 나는 모양이다. 석탄도 캔 곳에 따라 조금씩 값이 달라진다. 조개탄 모습으로 다듬지 않은 채 곡괭이로 캐낸 날이 그대로 살아 있는 석탄 조각이다. 울랑바아타르 가까운 곳인 ‘날라이흐 1100투그릭’이라 써 붙인 광고 종이가 보인다. 1300투그릭짜리 석탄도 있다. 북쪽 샤린골 것인가. 어느 탄광에서 나온 것인지 팔리기도 앞서 따뜻한 온기를 뿜어낸다.
셀베 강을 따라 흘러내리는 동안 차창 안에서 바깥 눈 세상을 바라본다. 아침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재갈거리며 버스에 오른다. 무더기로 내린다. 추운 날씨지만 울랑바아타르 중심가로 나가는 사람으로 버스는 가득하다. 시내로 들어와 숙소 가까운 ‘야인시대 2’ 식당으로 들어갔다. 교민 식당이다. 양 많은 돼지볶음을 점심으로 시켰다. 짜다. 그러나 참는다. 세 시간 남짓 가볍게 즐긴 울랑바아타르 북쪽 담바다르자 나들이는 그 짠 돼지볶음을 깨끗이 비울 만큼 내게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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