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렝게의 하늘 연꽃 아마르바야스갈란트 절
박 태 일
울랑바아타르 서쪽 송기노 드라곤센터 버스정류장에서 다르항으로 가는 미크로버스에 몸을 실었다. 219킬로미터, 기차로 8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미크로버스는 3시간이면 닿는다. 먼저 들리기로 한 셀렝게아이막의 아마르바야스갈란트히드, 곧 아마르 절에 가기 위해서는 다르항에서 떠나는 길이 가장 좋다. 다르항에는 봄에 한 차례 들린 뒤 두 번째 걸음. 그런데 9시 10분에 떠난 미크로버스는 11시 40분 다르항 신시가지 정류장에 이르렀다. 2시간 30분만에 들어선 셈이다. 아마르 절까지는 135킬로미터 남짓 다시 가야 한다. 처음 100킬로미터까지는 에르디네뜨로 들어서는 아스팔트 덮은 길이다. 일찍 점심을 먹으면 해 있을 때 다르항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 듯 싶었다. 그래서 첫날 낮 시간은 다르항에 머물기로 했던 계획을 바꾸었다.
몽골 북쪽을 둘러보기 위해 기회를 엿보기 시작한 때는 9월 중순이었다. 거기만 걸음을 들인다면 서쪽인 우브스, 올기, 그리고 호버드 세 곳을 젖혀두고는 몽골 21개 행정 구역을 조금씩 스친 셈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 몽골 땅을 가늠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기회가 잡히지 않는다. 통역할 학생을 한 사람 데리고 가려 하나 이미 개학 뒤다. 함께 다닌 경험이 있는 체빌레나 몽금줄은 재학생이라 시간을 낼 수 없다. 게다가 그 둘 모두 기독교 신자니 주말을 비우게 하기도 어렵다. 집에서 쉬고 있으려니 하고 8월 졸업자 몇몇에게 연락을 넣었더니 그들도 뜻같지 않다. 어쩔 수 없이 10월 초순까지 이저리 울랑바아타르 가까운 곳을 가볍게 나드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날씨가 영하를 가리키는 날이 잦아지자 마음도 바빠졌다. 더 추워지기 앞서 마음 먹은 대로 몽골 북쪽 셀렝게와 에르디네뜨, 그리고 볼강을 둘러보기로 하고 혼자 길을 나선 때가 10월 18일이었다. 홀가분하게 4-5일을 가늠한 걸음이다.
아마르 절에 갈 택시 흥정은 쉽게 끝났다. 이른 시각이지만 택시를 식당 밖에 세워 두고 바삐 점심을 챙겨 먹은 뒤 다르항으로 길을 잡았다. 12시 10분. 다르항 시가지 서쪽에서 남북으로 낮고 길게 자리잡은 구릉 산 쉬레노르, 이름 그대로 탁자 산 능선은 다시 보아도 아름답다. 탁자 들 남쪽 끝자락을 가로 질러 차는 에르디네뜨로 벋은 포장길을 신나게 내빼기 시작했다. 다르항과 셀렝게는 몽골에서도 농사를 많이 짓는 곳. 길 두 옆으로 잘 갈무리된 밭이 넉넉하다. 다르항에서 30킬로미터 지난 농골 마을부터는 경작회사의 대규모 밭이 자라 있었다. 밀을 심는 곳인 듯한데 크고 반듯하게 다듬었다. 해걸이를 해서 가을걷이 끝난 자리, 너비를 두고 땅을 갈아 엎은 어두운 자리와 그냥 둔 밝은 자리가 번갈아 가며 깊은 줄 무늬 고랑을 이루고 있었다. 땅을 갈지 않은 곳에서는 밀짚 노적가리가 촘촘히 놓였다. 소며 양떼가 그 금빛 너비를 게으르게 뜯는다.
1시간을 넘어서자 어러헝 강에 닿는다. 몽골 여느 곳처럼 넓지 않는 물길이 구비를 마음껏 틀었다. 스산한 가을빛 감도는 물가에 붉은 키버들이 덤불을 이루고 있다. 강에서 잡은 잉어와 메기를 내파는 노점이 다리 가까이 보인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이미 차 두어 대가 먼저 멈추어 서 있다. 몽골 사람들은 유목민 전통에 따라 물고기는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물가 지역에서는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봄에 본 셀렝게 수흐바아타르 시장에서는 훈제 민물고기를 파는 가게가 여럿 있었다. 여름 홉스걸 호숫가에서는 나뭇가지에 걸어둔 훈제 물고기가 가지런했다. 어르헝 강가에서도 묶은 끈을 그대로 둔 훈제 잉어며 메기였다. 기름기 잘 오른 몸으로 끈 채 묶여 있으니 서로 다른 두 물고기가 한 동기같다. 잉어 한 마리가 5000투그릭 정도로 싼 쪽은 아니다. 그러나 별미를 위해서는 참을 수 있는 값 아닌가. 차는 어러헝 강을 건너 달렸다. 바양바롱 솜에 이르기 앞서 다르항-에르디네뜨 교차로 기점 100킬로였다. 아마르 절로 가는 새 표지판이 관광 게르캠프 광고판과 함께 커다랗게 서 있다. 이제 35킬로미터만 비포장 길을 따르면 셀렝게 땅의 빛나는 별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길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낮은 고개를 서넛이나 바꾸고, 골짜기를 지나는 걸음에서는 기사 바아타르도 초행인 듯한 낯빛으로 조심한다. 고개마다 자그마한 어워가 어김없이 서 있다. 바아타르는 몽골의 다른 기사와 다름없이 경적을 세 번 울리고 어워 왼쪽으로 지나친다.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형편에 드리는 간편 참배다. 둘레 산에는 드문드문 자란 낙엽송이 노랗게 물들어 어둡게 가라 앉은 초원과 맞선 맵씨를 뽐내고 있다. 드디어 관광 게르캠프가 멀리 보인다. 아직 걷지 않았다. 10월인데도 사람이 드나드나 보다. 2시 45분, 다르항을 떠난 지 1시간 35분만에 아마르 절이다. 3시간 남짓 걸릴 것으로 짐작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이르렀다. 남쪽을 넓게 틔운 채 낮은 산으로 둘레를 감싼 모습이다. 그 가운데 온통 붉은 빛깔로 가꾸어 앉은 절과 담장 밖으로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요사채 몇. 자그마한 사하촌을 거느린 아마르 절은 첫눈에 들 위에 떠 있는 붉은 연꽃 무더기였다.
절 앞 풀밭에서는 스님들이 어울려 공을 차고 있다. 동자에서 청년에 이르기까지 열댓은 됨직했다. 붉은 체육복을 입은 채 큰 키 작은 키 어울려 즐겁게 공을 따라 간다. 골대라야 통나무를 잘라 꺽쇠 모양으로 세운 것이다. 그 가운데 조금 들어 보이는 동자승이 축구를 하다 말고 열쇠 꾸러미를 들고 내 앞에 선다. 관광객 안내를 맡은 스님이다. 아마르는 오늘날 남아 있는 절 가운데서 울랑바아타르의 간단, 하라호린의 에르덴조와 함께 몽골이 자랑하는 셋 가운데 하나다. 규모로야 그들에 비겨 작으나 1937년 사회주의 종교 탄압에 따른 피해를 크게 입지 않아 옛 태깔을 엄연하게 볼 수 있는 절이다. 지역 군대 지휘관의 힘이 컸다고 했던가. 게다가 간단이나 에르덴조와 같이 관광객의 발길이 들끓어 빤지러운 곳도 아니다. 오가는 걸음이 쉽지 않는 까닭에 한적한 분위기를 한껏 품었다.
아마르 절은 1727년부터 1737년 사이 청나라 양식에 따라 세워졌다. 그래서 절 이름을 올린 편액에도 아예 칙근경령사(勑建慶寧寺)라는 한문 이름자가 더 돋보이게 쓰여 있다. 평안과 즐거움을 바르게 세운다는 뜻이니 아마라바야스갈란트를 직역한 셈이다. 위대한 고승 자나바자르에게 바쳐진 절이다. 그는 종교 정치 일원 체제의 으뜸 자리인 보그드에 처음으로 올랐던 사람이다. 그러면서 오늘날 울랑바아타르에 화려한 개인 박물관까지 남길 만큼 뛰어난 조각가로 몽골 예술의 아버지라 칠 만한 이다. 국기에 들어 있는 몽골 상징 문장인 소염보도 일찌감치 그가 만든 것이다. 입적한 뒤 미이라를 1779년까지 아마르 절에 모셨다 한다. 오늘날은 본전 뒤 오른쪽 법당 하나를 자나바자르에 바쳐 받들고 있다. 자나바자르의 작품을 헝겊에 인쇄해 벽걸이로 삼은 꾸밈새가 재미 있다. 그리고 노란 게르 궁도 한 채 세워 두었다. 머물고 있는 스님이 70명 남짓 된다는 기록을 보았지만 그들 모습은 뜨이지 않는다. 들어올 때 본 축구 마당 스님들이 모두다. 단촐한 규모를 닮아 안쪽 꾸밈새도 단정하다. 그래서 여느 절보다 정겹다. 본전에는 한문으로 ‘복우항사(福佑恒沙)’라 쓴 편액을 걸었다. 헬 수 없이 많은 복을 받도록 도와주는 곳이라는 뜻인가?
본전을 나서니 문 앞에 라마탑 양식을 따른 조그만 돌탑이 하나 섰다. 안내승이 그 돌탑에 영검이 많다고 덛붙인다. 기사 바아타르는 멈칫거리지도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탑 뒤로 기어 들어가 안에서 쪼그려 앉아 몸을 세 번 시계 방향으로 돌린 다음 일어서서 소원을 빈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기어 나와서 탑에다 이마를 맞대고 기도로 마무리한다. 겉으로 보기에 몽골 불교는 소승불교인 라마교답게 개인의 기복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 탑도 그런 일에 쓰이고 있는 셈이다. 높이나 돌 수 있는 안자리 됨됨이로 보아 처음부터 기도처로 쓰기 위해 만든 탑은 아닌 듯했다. 작은 동자승이라면 모를까. 어른 한 사람이 기어 들어가 나오기에 어려운 크기다. 물론 업을 씻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몸소 느끼게 한다는 위압적인 두루풀이를 덧붙인다면 더 따질 말을 찾기 힘들겠지만. 나도 바아타르를 따라 멈칫거리지 않고 끙끙거리며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관광객이라고는 한 사람 없는 법당을 걸어 나오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몽골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 날씨를 하루에 겪을 수 있다고 한 뜻이 이것이렸다. 절에 들어설 때까지 파랬던 하늘이 어느새 절 둘레를 눈사태로 만들었다. 게다가 차가운 바람까지 데리고 왔다. 기사와 동자승은 절 앞 가게에 머물고 있겠다며 재빨리 절을 빠져 나간다. 나는 둘레를 죄 밟을 심산으로 서나서나 걸었다. 당간지주가 하나 원형을 거의 지닌 채 서 있다. 우리나라 것과 닮았으나 받침돌에는 화려한 줄 무늬를 넣었다. 절 바깥에 남아 있는 외벽도 묵은 태깔을 더한다.
가게에 들어서니 동자승이 보쯔를 먹고 있다. 나는 입장료 3000투그릭에다 보쯔 값까지 계산했다. 따로 사진 찍는 값 5000투그릭을 받지 않았던 까닭이다. 안내를 맡았던 동자승에게는 1000투그릭 슬쩍 더 넣어주고 일어섰다. 그 모습을 주인 아주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보고 있다. 바아타르는 마음이 바쁜지 빨리 가자는 시늉이다. 눈이 쌓이면 고갯길에서 곤욕을 겪을 분위기라는 것을 모르는 나도 아니다.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절 서쪽 1킬로미터 떨어진 등성이에 새로 세운 탑이며, 절 북쪽 부렌한노르 산도 오르고 싶지만 이미 어려운 일. 시각도 4시를 한참이나 넘어섰다.
뒷날을 기약하며 절을 나서니 벌써 길에는 눈이 두텁다. 관광 게르캠프 지역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서자 아니나 다를까 차가 미끌어진다. 낭패다. 몇 차례 이 길 저 길 오르다 말고 밭고랑을 타기로 했다. 차가 멈추면 내가 내려서 밀고 다시 가다 밀고 보니 한참만에 언덕이 끝났다. 내리막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눈이 더 거세졌다. 어두워지는 둘레를 눈발이 퉁기는 흰 빛으로 밝히는 꼴이다. 눈 폭포에 갇혔다. 코 앞에 걸린 산 능선이 잿빛 실루엣으로만 보일 따름이다. 길가 풀더미도 매서운 눈바람을 이기기 힘든지 지나는 차는 아랑곳 않고 고개를 한껏 움추렸다. 골짜기를 빠져 나와 에르디네뜨와 다르항 사이를 오가는 아스팔트 길로 차를 올릴 때까지도 눈발이 잦다. 그러다 바양바롱 솜을 지나고 핫탈 솜을 지나면서 눈이 그치기 시작한다. 차가 어르헝 강 다리를 건널 때는 다시 맑은 하늘에 낀 노을.
물고기를 파는 사람은 그때까지 전을 펴놓고 있었다. 기사 바아타르는 물고기에 마음이 자꾸 가는 모양이다. 나에게 사지 않겠느냐는 눈빛이다. 다시 훈제 물고기를 보러 차에서 내렸다. 여행하는 걸음이라 장딴지보다 큰 놈을 살 수야 없다. 바아타르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작은 잉어로 한 마리 고른다. 택시 안에서 운전을 하면서 손으로 살을 발라내 먹기 시작했다. 모처럼 들린 강가에서 사먹는 물고기는 별미였을 것이다. 나에게도 맛보기를 권했지만 웃으며 사양했다.
다르항에 되돌아온 시각은 깜깜한 저녁 7시. 미리 잘곳으로 찍어 두었던 크리스탈호텔로 갔다. 그런데 35000투그릭을 받는 럭스 방만 한 개 남았다고 한다. 굳이 비싼 방에 묵을 까닭이 없다. 시간이 많이 남은 데다 다른 도시에 견주어 다르항은 호텔 시설이 잘 마련된 곳 아닌가. 곁에 붙어 있는 스나이프호텔로 들어섰다. 두 말없이 12000투그릭짜리 스탠다드 방 열쇠를 내어준다. 잘 갖춘 방이다. 아래층에 붙어 있는 식당으로 내려가 저녁을 먹었다. 다르항 호텔들은 거의 다 식당을 갖추고 있어 이럴 때는 손쉽다. 고기덮밥격인 골야쉬를 시켰는데 값에 견주어 맛이 있고 짜지도 않다.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도시답다. 아마르 절을 찾은 첫날 셀렝게 여행은 생각보다 일정을 앞당긴 셈이다. 이제 내일 아침 다르항 쪽을 몇 군데 본 뒤 에르디네뜨에 닿으면 이튿날 일정이다. 텔레비전 위성방송에는 뜻밖에 한국의 연합뉴스가 잡힌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마 깨닫지 못하겠지만 나는 밤새 몇 차례나 꿈 속으로 날아 올라야 할지 모른다. 흰 눈발을 온몸에 묻힌 채 하늘에 떠 있을 한 포기 붉은 연꽃, 아마르바야스갈란트히드까지 다녀 오는 걸음은 낮보다 훨씬 쉬우리라.
'어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걸어가면 떠오르는 仁..rethink (0) | 2008.09.01 |
---|---|
퍼온 글- 한국 경제, 무엇이 위기인가? [42] 김광수경제연구소 (0) | 2008.09.01 |
삼일묵은.. (0) | 2008.08.31 |
엊그제 왕진.. (0) | 2008.08.29 |
뭐... (0) | 2008.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