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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급서적’으로 연구자 유혹하는 ‘바벨의 도서관’

허연소 2008. 4. 8. 11:35

 

 

고급서적’으로 연구자 유혹하는 ‘바벨의 도서관’

 

교수신문(2008.324)

최익현 기자.

 

 

‘100M 光 Lan’, ‘빛의 속도’ 등의 ‘유선인터넷’ 광고문구가 아파트 단지 곳곳에 나붙었을 때, 마침내 정보 속도전이 과거의 기억을 담고 있는 책의 존재감을 더 얇게 만들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지만, 인터넷을 기반으로 ‘古書店’을 운영하는 이들은 ‘우려’ 대신 실험과 도전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전혀 조화를 이룰 것 같지 않은 인터넷과 ‘고서’의 만남은 ‘도서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북임팩트(www.bookimpact.com)’를 둘러보면 생각을 달리하게 만든다. 이곳을 통해 검색할 수 있는 중고서점은 모두 97곳. 물론 모두가 같은 ‘고서점’은 아니다. 참고서나 아동물까지 포함하는 서점에서부터 ‘更子字本’ 같은 15세기초 희귀본 등을 다루는 진정한 의미의 ‘고서점’까지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인터넷 고서점이 흥미를 끄는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하이테크와 하이터치를 결합해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정보검색 시스템의 수월성이 ‘하이테크(high tech)’의 한 부분이라면, 구매자와 공급자의 단순 관계를 넘어 맺어지는 끈끈함은 ‘하이터치(high touch)’의 한 부분이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장서를 수집해온 것으로 알려진 박태일 경남대 교수(국문학·시인)는 시대의 변화가 장서 구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저도 그렇지만 제 주변 교수님들도 온라인을 선호합니다. 70~80년대 오프라인 서점 전성기엔 길목길목 찾아다니면서 책을 구입했지만, 요즘 일일이 찾아다니며 구입하는 분들은 거의 안 계시죠.” 박 교수는 대학도서관 등 공공도서관에서 구할 수 없는 자료나 학계에 공개되지 않은 자료를 얻게 됐을 때가 온라인 고서점 이용의 묘미라고 털어놓는다.  

 

온라인 고서점은 대략 2000년부터 등장했다. 이들의 존재방식은 크게 세 유형이다. 경매사이트 형태로 운영되는 곳, 온라인 거래만 하는 곳,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곳이다. 발달 형태로 본다면 온오프→온라인→온라인경매 방식이지만, 셋 모두 든든한 우군을 확보하면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박태일 교수가 주로 활용하는 대구의 ‘금요고서방’은 온라인 경매를 주로 하지만, 매달 한 번씩 오프라인 경매를 한다. 금요고서방 박민철 사장은 오프라인 경매도 41회째 해오고 있다고 말한다. 경매 형태여서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자주 찾는 교수만도 1백여 명이 넘는다고 전한다. 

 

온라인 형태의‘노마드북’ 박은경 사장은 주 고객이 연구자들이라고 밝힌다. “이들은 관련 자료를 빠르게 구입할 수 있는 검색 시스템으로 노마드북을 활용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노동은 중앙대 교수(음악학),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사),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국문학) 등이 기억난다고 한다.

 

지형적으로 우군을 확보하고, 여기에다 다양한 인간관계를 활용해 수요자층을 확대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신림동에 자리를 튼 도동고서의 김종건 사장은 “양창수 교수님 같이 서울대 법대 교수님들이 자주 찾으시죠. 작가들도 많구요. 물론 지방에서도 찾아오시는데, 소개를 통해 찾아 오는 분들입니다”고 전한다.  

 

고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면서도 ‘사는’ 곳이다. 좋은 고서점을 운영하는 제일 요소가 ‘판매’가 아니라 ‘구매’라는 점은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이 경우에는 온라인, 온오프라인이 경매 고서점보다 불리할 수 있다. 경매의 특성상 끈기와 판단력, 그리고 자신할 수 있는 ‘좋은 자료’만 있다면, 온라인 경매 고서점으로 책이 몰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도동고서의 김종건 사장은 능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책 가져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좋은 책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수동적인 방식으로는 좋은 책을 구하기 어려워요. 저는 책이 있을 만한 분들께 메일을 보내거나, 찾아가서 만나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다보면 행운도 따른다는 게 그의 설명. “대학에서 정년퇴직하신 선생님의 책을 운좋게 만나면, 거기엔 좋은 자료가 많죠. 후학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자료가 되니까요.” 

 

온라인 고서점은 과연 롱런할 수 있을까. 한 온라인 관계자는 “고급서적(희귀성, 경제성, 전문성을 갖춘 도서)의 경우 거래량에는 변화가 없지만, 거래 사례들이 빈번해질수록 전문성이 축적되기 때문에, 이 경험치가 큰 척도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문성을 확보한 곳과 그렇지 못한 서점 사이에는 간극이 벌어지고, 이것은 온라인 고서점 분야도 예외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그는 “고서점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도태되고 말 것이다. 또한 말만 무성한 잔치처럼 과거의 유명세만 믿고 새로운 도서와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역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자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박은경 사장은 고서점이 인문주의를 확대하는 ‘바벨의 도서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메시지다. 김종건 사장은 특화 전략을 구상한다. “고고학, 발굴보고서, 도록 분야를 특화하고 싶어요. 열정을 간직하고 도전할 생각입니다.”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 온라인 고서점의 약진은 확실히 시대 추세를 잘 타고 있다. 대학도서관도 정보검색서비스를 갖추었고, 이처럼 온라인 고서점도 각자 자신들의 값진 데이터를 정보화했다. 그런데도 뭔가 허전하다. 주요 소장자들의 자료를 한 데 묶을 수 있는 공공정보센터 같은 곳이 있다면 연구자들이 자료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오프라인, 온라인 고서점에서 잔뼈가 굵은 박태일 교수의 아이디어인데, 곱씹어볼 만하다.

 

  

출처 : 소다
글쓴이 : 소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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